운영하는 공간에 들어가면 먼저 상태를 살필 것 같지만, 바로 방명록으로 향한다. 그리곤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하루 동안 잘 지내셨을지, 어떤 경험이 쓰여 있을지 기대하며 열어본다. 벌써 열권이 넘어가는 방명록에는 짧고 긴 글과 그림일기 등 각자만의 방식대로 하루 동안 겪은 경험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요즘 공간의 정체성과 색깔은 오시는 분들과 함께 만드는 거라고 느끼면서, 방명록은 공간을 지속하는데 큰 버팀목이자 누누이 살펴볼 보물이라고 확신한다. 처음 에세이의 주제인 '편지'를 생각하며, 단순히 옷장 맨 아래 있는 편지 보관함을 꺼내보았다. 손때 묻은 편지가 두툼하게 쌓여 있는 그곳에 손님들에게 썼던 손편지들과 퇴실 후 받은 쪽지들이 있었다. 그때, 뜻밖의 쪽지들을 받곤 환해졌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곤 그날 오후엔 습관적으로 방명록을 펼치다가 이것도 그동안 받은 편지라는 걸 번쩍 깨달았다. 그래서 공간 운영자에겐 방명록이 어떤 존재인지 찬찬히 풀어보려 한다.

2020년 말, '제로 웨이스트 숙소'라는 생소한 운영방식을 당차게 시작했다. 기후 위기 속 실천 방안을 알리고 필요한 이유를 설득하기 위해 오시는 분들에게 매일 편지를 쓰고 곳곳에 설명 문구를 쓰며, 꼼꼼하게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비누가 불편하다며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까, 쓰레기를 하나도 만들지 않아야 하냐며 항의를 하진 않을까 마음 졸이는 날이 길어졌다. 돌이켜보니, 점차 긴장을 놓을 수 있던 순간은 방명록 속 사람들이 남기곤 간 마음 덕이었다. 생각보다 비누 거품이 잘나서 좋았고, 일상 속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서 고맙다는 이야기가 다양한 연령대의 글씨체로 쓰여 있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지금은 제로 웨이스트 숙소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고 실제로 걱정하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을 시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불안하고 막막하다. 혼자서 끌어가는 마음이 들 때마다 방명록과 SNS 후기, 문자들이 지탱하고 지속하게 만들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몇 년 후, 지향하는 가치들을 모은 공간 '지향집'이란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다. 누구나 운영자가 될 수 있고, 수익 없이 최소 관리비만 얻는 '실험'을 하고 있다. 서로의 재능과 생활 기술을 교환하고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연대와 공감을 얻고, 함께 요리를 해서 생활력을 키우고 안부를 묻기도 하며, 태어난 존재는 있는 자체로 귀하다는 걸 담는 공간이다. 앞서 말한 지향집 설명도 처음부터 준비된 것은 아니었고, 누군가 공간을 관찰하며 느낀 점들을 적은 방명록 속 문장들을 조합한 것이다. 낯선 방식에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걱정도 했지만, 운영 10개월 차 잘 돌아가고 있어서 얼떨떨하다. 덕분에 공간은 방문자들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걸 확신하고 있다.

방명록은 운영자가 지속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방문자들의 공감을 이끌고 공간을 언어화 시켜줄 단어들을 수집할 수 있는 장치다. 적혀진 편지를 읽을 때면 낯선 방식을 지닌 공간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일에 주저함이 사라지고 생기가 돈다. 그렇기에 지치거나 힘들 때면 방명록을 제일 먼저 찾게 되고, 다른 공간에 가선 꼭 방명록을 작성하고 온다. 내가 받은 만큼, 이곳의 운영자를 독려하고 응원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