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계속 올라갑니다.
끝없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꼭 한 번 그녀를 만나야만 합니다.
올해의 마무리를 함께 할.
좋은 '사람'을 알게 되어 기뻐요.
생일 카드를 품에 안고 가도 가도 계속 알고 싶어요!
생일 축하했어요.

2018년 12월 8일 그녀로부터

나는 저 편지를 받고서 그날 오후 그녀에게 고백했다. 그녀는 시작의 영원을 받아주었고, 우리는 아름다움으로 빛날 미지의 세계로 첫걸음을 함께 내디뎠다. 우리의 언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 편지는 그녀가 좋아하는 시집 문구와 직접 쓴 문장으로 만든 편지다. 소중한 추억들을 담아 놓는 파란색 스탠리 런치 박스에 들어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서로를 찍은 흑백 사진들, 그녀의 작품인 콜라주 작품으로 만든 편지지, 아이슬란드에서 가져온 작은 화산석들, 그녀를 위해 엮은 시집과 같이 있다. 나는 저 편지를 직접 손으로 들고 바라본다. 편지를 받은 카페 공간과 차가운 12월의 계절감, 창문을 투과하는 따사로운 황금색 햇빛. 싱어송라이터 우효의 ‘Teddy Bear Rises’가 흘러나오고, 편지를 주고받은 시작의 손들과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떠오른다. 아름다웠던 특별한 순간. 그 순간이 살아 숨 쉬고 동시에 우리를 우리의 모양으로 만들어 준 과거의 유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편지는 영원히 보존되는 언어의 유산이지 않을까라고.

연인은 서로를 알아가면서 수많은 언어를 쌓아 올린다. 전화하거나 직접 만날 때는 음성 언어를,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핸드폰으로 디지털 문자 언어를 나눈다. 특별한 날인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검은색 펜을 들고 하얀 종이에 깨끗하고 갖춰진 마음을 옮겨 적는다. 음성 언어, 디지털 문자, 손글씨 이 세 개 모두 다 살아있는 활어(活語)로서 연인의 세계를 크게 휘저으며 사랑의 모양과 언어를 진화시킨다.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하고 마음을 내어준다. 하지만 음성 언어와 디지털 문자는 그때의 계절과 호흡을 떠오르게 하는 물성으로서 남지 못한다. 음성 언어는 내뱉는 순간 휘발되고, 디지털 문자는 스크롤로 작은 화면 내에서 빠르게 사라진다. 편지는 두 언어가 쓰이는 수에 비해 많이 적지만, 가장 오랫동안 남는 언어다.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보존된 문자이자 사랑하는 사람의 글씨체로 쓰인 언어이기에 시간이 지나 낡아도 그 가치는 존중된다. 이십 대 때 서로에게 쓴 편지가 일흔이 넘은 노년 부부의 황금색 보자기 안에 여전히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자식에게는 쌓아온 물리적 유산을 남기고 서로에게는 쌓인 언어적 유산을 남기는.

연인은 서로를 알아가면서 수많은 사랑의 유산을 남긴다. 사진으로, 편지로, 서로를 위해 손수 만든 창작품들이 빛나는 추억으로서 존재한다. 그 추억이 되는 물리적 유산들은 연인을 연인답게 만들어주고 쓰임을 다한다. 연인을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미래로 이끌어주고 과거로 보존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편지는 문명의 진보를 견인하고 다음 시대를 열어준 어느 잊힌 고대 문명의 유산과 같다, 런치 박스를 열 때마다 문명의 유산은 새롭게 발굴되고, 이미 발굴한 유산은 우리의 과거로서 존재한다. 그 유산들은 우리만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게 하였고, 우리만의 모양으로 만들며, 우리만의 미래로 이끌었다. 그녀가 남긴 말처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올라가고, 끝없이 올라갈 것이다. 그녀가 처음 쓴 편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쌓아오고 앞으로도 쌓아올릴 언어의 유산들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