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기준으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다른 표현으로는 수험생이라고도 불린다. 또 다른 자아 중의 하나는 기록자이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뉴스레터에서 나의 기록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세 가지의 플랫폼을 사용하지만 하루에 있었던 일을 회고하거나 삶을 살아가며 얻은 것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기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편지라는 단어를 두 손에 받아들고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꾸준히 하고 있는 이 기록이 현재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같다고. 당장 다시 읽어보면 부끄럽지만, 미래의 내가 다시 꺼내보면 지금을 추억할 수 있는 타임캡슐 같은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올해 꼬박 일 년이 되었다. 편지의 시초는 바야흐로 여름방학 때였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여름방학을 기록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 그 시절,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경험한 것들을 글로 남겼다. 그때 해방촌 독립서점의 독립출판 클래스를 듣게 되었고 일 년 동안 나에게 꾸준히 편지를 전하다보니 기록 자아가 생겼다. 보통 나에게 편지를 쓰지만 타인에게도 편지를 쓴다. 사람들이 나의 기록을 보고 힘을 얻는 것처럼 나도 다른 이의 기록에서 위로를 얻기도 한다. 특히 어라운드 매거진을 좋아한다. 특유한 감성, 개인들의 따뜻한 이야기에 첫 눈에 반해버렸고 한참 수집할 때가 있었다. 그날도 동네 북카페를 둘러보다가 노오란 개나리 꽃 같은 표지에 기록이라는 주제를 가진 이 잡지를 어떻게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다 어느 순간에서 턱,하고 멈췄다. 자신의 어머니의 기록을 인터뷰한 꼭지에 유독 눈이 머물렀다. '사랑을 쓰려거든 가계부에 쓰세요 - 엄마 강신숙, 그녀의 기록에서 가족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 30년 치의 가계부와 사진, 기록들을 통해 켜켜히 쌓인 어머니의 세월을 읽을 수 있었다. 오밀조밀한 어머니의 기록이 유독 귀엽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몽글몽글해진 마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글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담아 기사를 쓴 에디터님에게 손편지를 보냈다. 물리적인 거리는 멀었지만 편지로 나눈 마음만은 한없이 가까웠던, 지금까지도 여전히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돌아보면 나에게 편지란,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내향적인 성격 탓이기도 하거니와 말로 마음을 전하는 게 조금 어려운 나는,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에 부끄러움을 많이 느낀다. 수줍은 마음이 앞서 쭈뼛쭈뼛하며 하려고 했던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편지를 쓴다. 종이 위에 내 마음이 생동감있게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경이롭다. 경이로운 모습이 상대에게 가닿았을 때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상해보는 것도 편지만의 묘미일테다. 정성스럽게 담은 진심에 상대방의 마음이 동해 좋은 답장을 주면 더할 나위없이 기분이 좋다. 그렇게 편지를 통해 인연들이 하나 둘씩 쌓여간다. 편지를 쓰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 사람에게 가지고 있었던 감정들을 바로 알아차리기도 한다. 고로 편지는 상대에게 마음을 전하면서도 나까지 알아갈 수 있는 진정한 글쓰기다. 쓰는 행위를 통해 머릿속에 있던 추상적인 것들이 펜의 끝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게 나를 마주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내 마음에 솔직해지는 편지에서부터 시작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