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라는 편지를 당신께 부치려면 사랑이라는 우표가 꼭 필요하다. 감정 없이는 편지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격동과도 같았던 초년의 사랑기를 지나 건조한 삼십 대의 사랑까지도 늘 사랑이란 감정을 활자로 담아 편지를 써 왔다. 때로는 강요와 의무감에 쓰기도 했던 때가 있었음에도, 차츰 시간이 흘러 그 일은 버릇처럼 익숙해지고 있었다. 펜을 자주 잡으면 생기는 굳은살처럼 글도 자주 쓰다 보면 단단해 진다. 묘연한 감정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경해진다. 나는 사랑을 자주 확인하고 싶어서 눈 앞의 마시멜로우를 못 참는 아이처럼 편지지를 꺼내 들곤 했다. 또는 떠나간 이가 그리워 펜을 들기도 했다. 사랑과 그리움은 이복형제 같은 것이니 내 편지의 행보는 그 둘 사이를 종종 오고 갔다. 때문에 잠시나마 약여해지는 상대의 모습에 스스로가 참담해져 내다 버린 편지도 참 많았다. 그러한 이유에서 나의 편지는 받는 사람이 없으면 더는 소중하지 않았다. 나의 편지에는 일종의 편애하는 자식처럼 그리움 말고 사랑이라는 우표가 꼭 필요했다.

글은 열린 서랍처럼 명징하다. 어떤 마음으로 작성했는지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닿길 바라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색감의 편지지를 가판대 앞에서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한다. 편지는 애정표현에 지나지 않아서, 저녁 식사 대신 전하는 끼니 같은 것이라서, 꽃다발과 함께 전하는 소소한 안부 같은 것이라서 대체로 소중하다.

나의 사랑에는 연인만이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책상 위에 두고 간 편지를 읽던 순간을 떠올리면 눈물이 차오른다. 그날은 내가 기존에 있던 책상에서 새 책상으로 바꾼 날이었다. 아니, 엄마가 바꿔준 날이었다. 누나가 새 책상으로 바꾼 것이 몹시 질투가 나서 내내 엄마를 졸라 샀던 책상이었다.

“아들, 더 좋은 책상 못 사줘서 미안해.

나중에 엄마가 더 좋은 걸로 바꿔줄게, 사랑해.”

투박한 글씨, 줄공책을 가위로 대충 잘라 쓴 편지였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그날 그 편지를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남긴 사랑한다는 말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내 들들 볶았던 나에 대한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마다 더 울라고 보챈 문장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해주고도, 사주고도, 먹이고 키워주고도 미안하다는 말을 도장처럼 들고 다니며 내 기억 속 마디마디에 지장 찍듯 하는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사무쳐 왔다.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엄마의 영혼은 매 순간 마음이 무거워 가라앉았을 것이다. 위로라는 항생제 처방도 거부한 채 응급환자처럼 마음을 이곳저곳 옮겨 다녔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연인에게 남발하던 사랑한다는 말을 엄마에게 꺼내기 어색해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더 많이 했다. 그것도 사랑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사랑하면 미안한 일이 많아진다. 야근이 잦은 아버지가 치킨을 사들고 오는 이유와 비슷한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살았다.

그래서 나의 편지는 대체로 사랑과 미안함을 혼용한다. 구원을 기도하고, 구제를 빌어본 사람으로서 미안함은 결국 스스로를 구원하는 말임을 잘 알고 있다. 언제나 신중히 고른 편지지 위에 다소 조야하게 나의 감정을 담으면서도 그 감정이 적확하게 읽히길 바라고, 펜으로 쓴 나의 영혼이 스민 활자가 당신의 눈에 담기길 염원한다. 나는 대체로 그런 삶을 살아왔다. 해서, 나의 삶을 누군가에게 부치려거든 사랑이라는 우표가 꼭 필요하다. 나의 따듯한 문장과 사랑 가득한 단어로 채워지는 편지 속에는 언제나 부재했던 관심에 대한 미안함과, 편협한 시선이 만들어 낸 오해에 대한 사과, 성급하게 전한 말에 대한 해명이 존재한다. 열지 않은 서랍은 그 자체로 자명할 수 있어도 명징할 수 없다. 편지란 양가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호소가 호응이 된다. ‘안녕’과 ‘이만 줄일게’ 사이의 무수한 공백을 삶으로 대체하는 것일 뿐, 진정한 마침은 우표다. 나는 이 글에도 우표를 마저 붙였다.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서, 나의 구제를 위해서.